서울로 다시 올라온지 두달이 넘어간다. 내가 지내는 곳은 신림동의 한 골목에 위치한 원룸.
야근을 밥 먹듯이 하다보니 언제나 늦게 퇴근을 하게 된다.
신림역에 내려서 걷노라면 술에 휘청히는 젊은이들과 직장인들.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을 유혹하는 사람들.
그 속을 지나가는 여자들이 보인다.
그중에서 유독 보이는 것은 여자들.//
-- 매춘의 골목 - 이율배반 --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는 모텔들이 밀집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분주히 움직이는 차량과, 술에 취한 행인들. 그리고 항상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자들이 모텔 안으로 분주히 드나들고 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굳이 묻지 않아도 답은 알 것이다.
성매매 혹은 매춘.
우리는 흔히 성매매를 불법이고 비윤리적인 것이라 칭한다.
자신의 몸을 팔며 돈을 쉽게 버는 여성들을 비난한다. 성스로운 '성' 을 파는 것에 대해서도 비난한다.
그런데 웃긴것이 뒤집어 생각하면 직장을 다니며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며 돈을 버는 것도 결국 같은 것이다..
'몸' 을 파느냐, '몸' 을 이용한 노동을 파느냐 그 애매모호한 차이만 남을뿐.
누군가 이야기 할 것이다. 성을 파는 것과 일을 하는 것을 비교하는게 가능하냐고. 그런데 과연 그 속성 자체가 다른 것일까? 노동과 육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것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힘들게 일해서 돈 버는 것과 쉽게 일해서 돈 버는 것에 대해서 왈가불가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엄연히 윤리적인 관점에서 성을 팔고 매춘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윤리, 관념적이지만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이 있어야만 사회가 유지되는 개념. 윤리적으론 잘못된 성매매.
둘다 옳다.
성매매가 잘못된 것이라는 개념과 일반적인 노동과 다르지 않다는 개념.
둘다 옳은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따라야 하는 것일까? 자신이 옳다는 것만 따르면 사회는 유지되기 힘들고 가정은 파탄 할 것이다.
1, 노동 : 사회의 유지에 필수적인 생산활동을 가리키는 경제학 및 사회학의 용어.개요노동은 식량·의복·집 등 인간의 기본적인 물리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기능을 한다.
2. 윤리 :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
노동과 윤리의 사전적 의미.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노동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인 윤리. 이 둘은 언제나 합리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존재인가.
이율배반 -1. 매춘골목 두번째 이야기.
매춘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 돈을 매개로 성(性)을 사고 파는 행위.매음·윤락 행위 등으로도 통용됨 '
노동의 의미로 본다면 돈을 매개로 성을 사고 파는 것이나, 그 사람의 육체적 능력, 정신적, 지식적 능력을 사고 파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또한 위의 정의처럼 인간의 식량. 의복. 집 등 기본적인 물리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기능도 한다.
하지만 윤리의 관점에선 어떠한가. 애매모호한 윤리의 정의에선 단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에 어긋난다고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또다시 물어본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
노동으로서 옳다고 한다면 누군가 이야기 할 것이다. 사람이 밥만 먹고 배만 부르다면 동물과 무엇이 다른가?
윤리로서 그르다고 한다면 누군가 이야기 할 것이다. 윤리를 지킨다고 배 굶고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윤리가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잣대가 될 것인가?
세상에 움직이는 것들이 수 만가지를 넘어서거늘 매춘에 대해서 조차 옳고 그름을 판단하자니 어려운게 사실이다. 단순히 옳고 그름이 아닌 그 속성과 본질로서 따지고 본다면 우리가 항상 나쁘다고 생각해온 매춘 조차 정확한 잣대로 평가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편으론 생각해 본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이율배반의 원리 인 것이 아닐까.
누군가 매춘으로서 돈을 벌어 잘 살면 그만인 것이고, 누군가 매춘을 통해 쾌락을 얻으면 그만인 것이다.
반대로 누군가 매춘으로 부당한 이익을 얻고 모든 이들이 편하게 일 할려 한다면 그 역시 잘못된 것이고, 누군가 매춘을 통해
쾌락을 얻는다고 한들, 다른 누군가 그것을 알고 가슴이 아프다면 그릇 된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본다면 또 하나의 새로운 출구가 보인다. 이율배반의 원리, 모순된 하지만 서로 공존하는 세상속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입장' 이라는 것이 들어가게 된다.
누군가 보기엔 옳은것, 누군가 보기엔 그른 것. 서로의 입장 속에서 상반된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세상의 이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입장차이 때문에 매춘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한다면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정확한 잣대의 기준으로 흑백 혹은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모순과 혼돈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의 잣대로 인해 올바른 쪽으로 흘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구속된 자유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 같은 논리가 될 것이다.
매춘 이라는 소재는 단지 내 주변의 골목길을 통해 떠오른 것에 지나지 않다.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세상은 명확한 잣대 없이 단순히 명확 할 것이라는 잣대 속에서 흘러간다는 것이다.
재태크 책을 많이 읽어라. 하지만 거기에 대해 사람이 돈이 다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살아라. 하지만 거기에 대해 그 봉사로 인해 주변의 누군가 힘들어하는게 아니냐 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무의식적으로 펼쳐진 도덕과 윤리. 옳은 것과 그른 것. 그 속에서 우린 어떠한 명확한 잣대 없이 그저 옳다고 판단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고, 세상 역시 그렇기에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지도 모른다.
이율배반을 아는 것은 골치 아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른채 흘러가는대로 살아간다면 오히려 우린 길을 잃고 서성거리는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다보니 언제나 늦게 퇴근을 하게 된다.
신림역에 내려서 걷노라면 술에 휘청히는 젊은이들과 직장인들.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을 유혹하는 사람들.
그 속을 지나가는 여자들이 보인다.
그중에서 유독 보이는 것은 여자들.//
-- 매춘의 골목 - 이율배반 --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는 모텔들이 밀집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분주히 움직이는 차량과, 술에 취한 행인들. 그리고 항상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자들이 모텔 안으로 분주히 드나들고 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굳이 묻지 않아도 답은 알 것이다.
성매매 혹은 매춘.
우리는 흔히 성매매를 불법이고 비윤리적인 것이라 칭한다.
자신의 몸을 팔며 돈을 쉽게 버는 여성들을 비난한다. 성스로운 '성' 을 파는 것에 대해서도 비난한다.
그런데 웃긴것이 뒤집어 생각하면 직장을 다니며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며 돈을 버는 것도 결국 같은 것이다..
'몸' 을 파느냐, '몸' 을 이용한 노동을 파느냐 그 애매모호한 차이만 남을뿐.
누군가 이야기 할 것이다. 성을 파는 것과 일을 하는 것을 비교하는게 가능하냐고. 그런데 과연 그 속성 자체가 다른 것일까? 노동과 육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것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힘들게 일해서 돈 버는 것과 쉽게 일해서 돈 버는 것에 대해서 왈가불가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엄연히 윤리적인 관점에서 성을 팔고 매춘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윤리, 관념적이지만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이 있어야만 사회가 유지되는 개념. 윤리적으론 잘못된 성매매.
둘다 옳다.
성매매가 잘못된 것이라는 개념과 일반적인 노동과 다르지 않다는 개념.
둘다 옳은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따라야 하는 것일까? 자신이 옳다는 것만 따르면 사회는 유지되기 힘들고 가정은 파탄 할 것이다.
1, 노동 : 사회의 유지에 필수적인 생산활동을 가리키는 경제학 및 사회학의 용어.개요노동은 식량·의복·집 등 인간의 기본적인 물리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기능을 한다.
2. 윤리 :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
노동과 윤리의 사전적 의미.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노동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인 윤리. 이 둘은 언제나 합리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존재인가.
이율배반 -1. 매춘골목 두번째 이야기.
매춘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 돈을 매개로 성(性)을 사고 파는 행위.매음·윤락 행위 등으로도 통용됨 '
노동의 의미로 본다면 돈을 매개로 성을 사고 파는 것이나, 그 사람의 육체적 능력, 정신적, 지식적 능력을 사고 파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또한 위의 정의처럼 인간의 식량. 의복. 집 등 기본적인 물리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기능도 한다.
하지만 윤리의 관점에선 어떠한가. 애매모호한 윤리의 정의에선 단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에 어긋난다고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또다시 물어본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
노동으로서 옳다고 한다면 누군가 이야기 할 것이다. 사람이 밥만 먹고 배만 부르다면 동물과 무엇이 다른가?
윤리로서 그르다고 한다면 누군가 이야기 할 것이다. 윤리를 지킨다고 배 굶고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윤리가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잣대가 될 것인가?
세상에 움직이는 것들이 수 만가지를 넘어서거늘 매춘에 대해서 조차 옳고 그름을 판단하자니 어려운게 사실이다. 단순히 옳고 그름이 아닌 그 속성과 본질로서 따지고 본다면 우리가 항상 나쁘다고 생각해온 매춘 조차 정확한 잣대로 평가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편으론 생각해 본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이율배반의 원리 인 것이 아닐까.
누군가 매춘으로서 돈을 벌어 잘 살면 그만인 것이고, 누군가 매춘을 통해 쾌락을 얻으면 그만인 것이다.
반대로 누군가 매춘으로 부당한 이익을 얻고 모든 이들이 편하게 일 할려 한다면 그 역시 잘못된 것이고, 누군가 매춘을 통해
쾌락을 얻는다고 한들, 다른 누군가 그것을 알고 가슴이 아프다면 그릇 된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본다면 또 하나의 새로운 출구가 보인다. 이율배반의 원리, 모순된 하지만 서로 공존하는 세상속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입장' 이라는 것이 들어가게 된다.
누군가 보기엔 옳은것, 누군가 보기엔 그른 것. 서로의 입장 속에서 상반된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세상의 이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입장차이 때문에 매춘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한다면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정확한 잣대의 기준으로 흑백 혹은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모순과 혼돈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의 잣대로 인해 올바른 쪽으로 흘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구속된 자유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 같은 논리가 될 것이다.
매춘 이라는 소재는 단지 내 주변의 골목길을 통해 떠오른 것에 지나지 않다.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세상은 명확한 잣대 없이 단순히 명확 할 것이라는 잣대 속에서 흘러간다는 것이다.
재태크 책을 많이 읽어라. 하지만 거기에 대해 사람이 돈이 다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살아라. 하지만 거기에 대해 그 봉사로 인해 주변의 누군가 힘들어하는게 아니냐 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무의식적으로 펼쳐진 도덕과 윤리. 옳은 것과 그른 것. 그 속에서 우린 어떠한 명확한 잣대 없이 그저 옳다고 판단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고, 세상 역시 그렇기에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지도 모른다.
이율배반을 아는 것은 골치 아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른채 흘러가는대로 살아간다면 오히려 우린 길을 잃고 서성거리는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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